천룡팔부는 일단 내 취향에는 딱히 맞지 않는다. 기억과 이 블로그를 돌이켜 보면 난 주인공이 역경을 딛고 서서히 성장하는 무협을 좋아하는 건 확실한데, 이 소설 주인공 세 명은 처음부터 너무 강하거나 너무 급격하게 강해진다. 그래서 긴장감이 덜하다. 대신 역시 김용이기에… 이야기의 흐름 속에서 느끼는 긴장감과 흡인력은 여전하지만… 번역 때문인지 취향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실질적으로 중화권에서 이 작품이 문학적으로 크게 인정받는다고 하는데 왜 그런지를 모르겠다.
사조삼부곡 외에 천룡팔부, 소오강호, 녹정기는 예전에도 한 번 씩밖에 안 읽어 봐서 구판과 신판의 구분은 딱히 모르겠다. 나도 검색을 해보고서야 알았다. 최후 결말에 누가 누구와 이루어지냐 외에는 큰 차이는 없는 것 같다는 것이 내 느낌… 심지어 그 차이도 검색해 보지 않았다면 몰랐을 정도로 중요한 것은 아닌 것 같다.
교봉(소봉)은 무협에서 흔히 묘사되는 “대협”의 이미지에 가장 부합되기는 한다. 사조와 신조의 곽정보다도 훨씬 강력하고 똑똑하고 광명정대하다. 안타까운 점은 아자에게 너무 휘둘린다는 점…그래도 소설 속의 묘사에서 연상되는 이미지는 그야말로 찐주인공의 면모를 보여준다.
단예는 뭐… 가장 짜증나는 주인공이기는 하지만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 가장 큰 축. 그 어떤 작품보다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는 천룡팔부 내에서 거의 모든 사건의 중심이 되는 인물. 그 성장(?) 과정이나 행동은 마음에 안 들지만 미워할 수 없는 것은 확실하다.
허죽은 읽는 사람의 입장에 따라 호불호가 가장 갈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예전에 누군가와 천룡팔부에 대한 얘기를 할 때 그사람이 허죽이 제일 멋있지 않냐고 했을 때 나는 못생기고 멍청하고 그저 기연에 의해 무공이 강해졌는데 뭐가 멋있냐고 반문했던 적이 있다. 그 대화의 영향이 남아있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다시 읽어보니 어느 정도 동의하게 되었다. 소림사의 제자라는 것과 승려라는 신분에 얽메여 있는게 답답한 면모도 있기는 하지만 당장 죽을 지도 모르는 여러 번의 위기 상황에서도 오로지 자신의 신념을 지키려고 하는 모습이 멋있다. 결말도 사실은 가장 부러운 부분… 후속작에서 영취궁과 연결되는 부분을 찾기 어려운 것이 조금 아쉽다. 특히 허죽이 누군가에게 전수하게 되는 항룡십팔장과 타구봉법… 에서 그 누군가에 대한 이야기는 나올 법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전체적으로 읽는 중에는 그 특유의 흡인력 때문에 빠져들 수 밖에 없지만 읽고 나면 조금은 아쉽다는 게 개인적인 감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