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파트 단지 상가에는 아주 작은 슈퍼가 하나 있었다. 다섯 평쯤 되었을까, 주로 퇴근 후 맥주를 사거나 애들 마실 우유를 사던 곳이다. 내가 어릴 때만 해도 주택가 골목 어귀에 하나씩은 있던, 있을 건 있고 없을 건 없는 그런 흔한 동네 슈퍼였다.
출근이 조금 늦어진 8시쯤이면 무뚝뚝한 아저씨의 출근을 몇 번 마주쳤으니 아마 가게 오픈은 8시였을 것이다. 야근 후 지나갈 땐 이미 닫힌 경우도 있고 열려있는 경우도 있었는데 아마 10시 아니면 11시쯤 퇴근하셨을 것이다. 추석이나 설날에도 거의 빠짐없이 자리를 지키셨으니 최소한 내가 여기에 이사 온 후 몇 년 동안 휴가도 없이 하루에 12시간 넘게 일하신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가게가 자정 넘어까지 열려 있던 것은 아마 길 건너 마주 보이는 아파트 상가에 24시간 편의점이 생겼을 때부터인 것 같다. 그리고 또 얼마 후인지 슈퍼 바로 옆에 있던 작은 카페가 문을 닫고 아이스크림 할인 전문점이 생겼다. 슈퍼 아저씨는 가게 앞에 아이스크림 냉장고를 하나 더 내놓고 50%~80% 할인이라던가 3개 천 원 같은 큰 글씨를 써서 붙여놓았다.
그러던 어느 날 슈퍼가 문을 열지 않았다. 처음 문을 열지 않은 다음날, 사정이 있어 며칠 닫는다는 안내문이 붙었다. 소문을 들어보니 몸이 안 좋아 입원하신 아저씨를 대신해 그 아들이 붙여놓고 갔다고 했다. 그 사정은 생각보다 오래갔고, 내 기억에 최소 한 달은 지난 후 아저씨가 돌아왔다.
우유 한 팩을 사러 가서는, 평소 먼저 말을 걸어본 적도, 맥주 값 “3천8백 원입니다” 외에 다른 말을 들어본 적도 없지만, 왠지 무슨 말이라도 하고 싶어 “편찮으셨다면서요” 하고 여쭤보았다. 길 건너 편의점과 아이스크림 전문점 때문에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 몸도 힘들어 쌓였던 게 터진 것 같다는, 예상했던 말씀을 듣고 고생이시죠.. 하고 나왔다.
슈퍼가 다시 문을 닫은 것은 재오픈 후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가게는 이웃한 아이스크림 전문점과 함께 비워졌고, 두 가게의 벽을 허물고 합쳐 다른 24시간 편의점이 들어왔다.
가끔 사 먹는 4개 만원 짜리 수입 캔맥주가 왠지 별로 맛있지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