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 (알랭 드 보통)

무료 대여 받았는데 끝까지 못 읽었다… 리디셀렉트에서는 무료라고 하니 나중에 재가입하면 읽을 수도 있고… 안 읽을 수도 있고… 대략 중간까지 읽으면서 느낀 점은, 내가 쥐뿔도 없으면서 나름 자존감은 있는 편이라는 것. 이 책에서 얘기하는 쓸데없는(?) 시기심, 불안감 등은 나도 가지고 있지만 나름대로 잘 다스리거나 극복하고 살고 있는 중인 것 같다. 실제로도 (이 얘기를 들은 친구가 보내준, 신뢰도가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지만) 인터넷 자존감 테스트에서 평균보다는 높은 점수가 나오더라…

아래 노트들 중에는 다른 책에서 인용된 부분도 있다. 따로 메모를 해두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우선 남겨둔다.


부자들 가운데는 다섯 세대가 써도 남을 만큼 돈을 축적해도 만족할 줄 모르고 계속 모으는 사람이 많은데, 이것은 놀랄 일은 아니다. 부의 창조를 경제적인 이유만 가지고 설명하려 할 때에만 그들의 노력이 이상해 보일 뿐이다. 그들은 돈만큼이나 돈을 모으는 과정에서 파생되는 존경을 추구한다.


인간 삶의 위대한 목적이라고 하는 이른바 삶의 조건의 개선에서 얻는 것은 무엇인가? 다른 사람들이 주목을 하고, 관심을 쏟고, 공감 어린 표정으로 사근사근하게 맞장구를 치면서 알은체를 해주는 것이 우리가 거기에서 얻을 수 있는 모든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속물근성 snobbery’이라는 말은 영국에서 1820년대에 처음으로 사용되었다. 이 말은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의 많은 대학의 시험 명단에서 일반 학생을 귀족 자제와 구별하기 위해 이름 옆에 sine nobilitate (이것을 줄인 말이 ‘s.nob.’이다), 즉 작위가 없다고 적어놓는 관례에서 나왔다고 한다. 이 말은 처음에는 높은 지위를 갖지 못한 사람을 가리켰으나, 곧 근대적인 의미, 즉 거의 정반대의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상대방에게 높은 지위가 없으면 불쾌해하는 사람을 가리키게 된 것이다.


훌륭한 행동으로 남들의 감탄을 자아내는 것만으로는 우리의 근저에 깔린 감정적 욕구가 채워지지 않는다. 부엌 바닥에 집짓기 블록을 늘어놓기만 해도, 부드럽고 통통한 몸을 뒤치며 믿음이 담긴 눈으로 말똥말똥 바라보기만 해도 우리를 끌어안아주었던 그 관대하고 무차별적인 사랑을 다시 붙잡고 싶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가르침의 평등주의적 원리들에도 불구하고, 지상의 사회 구조를 개혁하여 구성원들이 땅의 부를 좀 더 공평하게 나누어 갖자고 주장하는 기독교 정치 이론가는 거의 없었다. 인간은 신 앞에서는 평등할지 몰라도, 이것이 현실에서 평등을 추구할 이유가 되지는 못했다.


이런 이론가들에게 훌륭한 기독교 사회란 엄격하게 계층화된 절대군주제였다. 이것이 하늘의 왕국의 질서를 반영한다고 믿었다. 신이 천사로부터 가장 작은 두꺼비에게 이르기까지 모든 피조물에게 절대 권력을 휘두르듯이, 신이 임명한 지상의 통치자는 사회 구석구석을 다스린다고 생각한 것이다.


“불평등이 사회의 일반 법칙일 때는 아무리 불평등한 측면이라도 사람들 눈길을 끌지 못한다. 그러나 모든 것이 대체로 평등해지면 약간의 차이라도 눈에 띄고 만다. … 그래서 풍요롭게 살아가는 민주사회의 구성원이 종종 묘한 우울증에 시달리고, 평온하고 느긋한 환경에서도 삶에 대한 혐오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프랑스에서는 자살률 증가를 걱정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자살은 드문 대신 광증이 다른 어느 곳 보다 흔하다고 한다.”


“그들은 이기심과 탐욕을 타고났지만, 그들은 오직 자신의 편리만 추구하지만, 그들이 고용하는 사람들의 노동으로부터 그들이 유일하게 원하는 것은 자신의 무한한 욕망의 만족뿐이지만, 결국 부자들은 모든 개선의 산물을 빈자들과 나누어 가진다. 그들은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려 마치 땅을 모든 사람이 균등하게 나누어 가지기라도 한 것처럼 생활필수품을 고르게 분배하며, 그 결과 의도와 관계없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회의 이익을 증진하고 종의 증식 수단을 제공한다.”


우리가 실패에 대한 생각 때문에 괴로워하는 것은 성공을 해야만 세상이 우리에게 호의를 보여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가족의 유대, 우정, 성적인 매력 때문에 가끔 물질적 동기가 부차적인 것이 되기도 하지만, 그런 것들이 자신의 요구를 온전히 충족시켜 줄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무모한 낙관주의자일 것이다. 인간은 웃어줄 만한 확실한 이유가 없으면 좀처럼 웃어주지 않는 법이다.


“나를 부유하게 하는 것은 사회에서 내가 차지하는 자리가 아니라 나의 판단이다. 판단은 내가 가지고 다닐 수 있다.. 판단만이 나의 것이며, 누구도 나에게서 떼어낼 수 없다.” - 에픽테토스, 《어록Discours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