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정기 (김용)

뭔가 낄낄대는 재미(?)는 있는데, 의외로 집중해서 끝까지 완독하기 힘든 작품. 기억을 더듬어 보면 영웅문 3부작 이후에 천룡팔부 소오강호 녹정기를 처음 읽을 때도 비슷했던 것 같다. 위소보의 좌충우돌 우당탕탕 행보가 재밌기는 한데, 10권을 끌어가면서 꽤 지루한 부분이 많은 것도 사실인 듯.

구판과 다른 점은 서장이 굉장히 길어졌다는 점. 구판에서는 선비들이 바로 천지회를 찾아가자고 하고 끝나는 반면, 신판에서는 “명사”라는 책에 얽힌 사건의 전모가 나온다. 바로 그 사건으로 천지회와 원수가 되고, 나중에 위소보에게 응징당하는 인물을 밝히고 시작한다.

그리고 극초반 태후와 해대부가 대화할 때, 해대부가 숭정황제를 언급할 때 태후가 당황하는 건.. 조금 앞뒤가 안 맞는 부분이 있지 않은가 하는데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므로 자세한 얘기는 생략한다..

아무튼 틈틈이 읽어도 재미는 있는데 생각보다 흡입력이 떨어졌다. 다만 전무후무한 명군이었던 강희제에 대한 흥미는 처음 읽을 때보다 훨씬 커졌다. 덕분에 중국 역사에도 더 관심이 생겼고. 강희제의 후손에 대한 얘기인(…) 영화 마지막 황제를 다시 보고 싶은 욕심도 생겼다.

아래는 기억에 남는 내용들.


일단 황태자에 책봉되면 후에 황제가 되는 운명이 정해지고, 어려서부터 다른 사람과 달리 엄격한 교육을 받는다. 울고 웃고, 일거수일투족까지 많은 감시의 이목에서 벗어날 수 없어, 그야말로 자유라곤 조금도 허용되지 않는다. 감옥에 갇힌 죄수라고 해도 마음대로 말을 하고 나름대로 행동을 할 수 있는데, 황태자가 받는 구속은 아마 죄수들보다 백배는 더할 것이다.


선교사의 말에 의하면, 세상에서 기약공강(欺弱恐強), 약한 자를 업신여기고 강한 자를 두려워하는 두 나라가 있는데, 하나는 일본이고 하나는 러시아라고 했다. 만약 러시아 사람에게 무조건 고개를 숙이면 그들은 득촌진척(得寸進尺), 갈수록 흉악해져서 기어오르려고 할 테니, 일단 본때를 보여 우리가 만만치 않다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줘야 한다.